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
그간 층간소음 때문에 꽤 예민해 져서, 인내심이 저하된 경향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대로 올라가 따지면 싸울 거 같아 나름 예의를 갖춘 긴 편지를 붙여넣고 왔다.
그렇게 주말의 새벽잠을 망친 노곤함을 추스리려 낮잠을 자는데, 깨어나 보니 어머니가 "윗집 처녀 왔다갔다." 고.
여차저차, 수염 깎고 단장하고 올라 가려니 엄마 말이,
"근데, 깜짝 놀랬다 얘. 어쩜 그리 그 아이랑 닮았는지.."
"?"
이건 뭔 얘긴가. 계단을 올라가며 심호흡 한번 하고 벨을 누른다.
"여기서 물러나면 난 바보가 된다. 화는 내지 말되 단호하게..단호하게..인사팀 고대리한테 개길 때(?) 처럼 밀리지 않게..이쁘다고 급정색하면 야 너 바보돼. 니가 당한걸 생각해 이 븅딱아. 마인드 컨트롤...마인드 컨트롤."
사실관계 이야기 하되 원수되지는 말자는 맘으로 열리는 문을 기다리는데 4~5초가 1분 처럼 느껴졌달까.
"누구세요?" "철컥"
순간 문이 열리고 연 분홍 투피스와 하얀 스타킹(집에서 왜 ;;)을 신은 젊은 여성이 나오는데.
정말 2년전 헤어진 그녀랑 얼굴, 스타일, 키 모두 닮았다.
3년을 만났고, 이대로는 너무 힘들다며 울며 떠났던 그녀. 그리고 한달 뒤에 새 사람을 만나 올해 봄 결혼을 한 그녀. 내가 미워했고, 또 미안했던 사람.
'아 도플갱어란 이런건가 ' 이게 무슨 조화..직전에서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돈 아니지만 조금 저만치서 보면 정말 착각할 뻔 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힌 소음의 주범이 그녀를 똑 닮은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남이 얘기하면 자작냄새 난다고 하겠지만 사실인걸.
'내가 상처를 줘서 도플갱어한테 대신 벌받는건가. 아닌가 이건 뭐지. 난 누구지 여긴 어디.'
"아까 편지 보고 찾아 뵐려고 했었어요.."
"아, 예.. 결례 했습니다. 좀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이 있지만 말씀을 드려야 된다고 생각해서요."
자초지종은 이랬다.
사실 그집엔 여성들만 살고 있는데, 아랫 동생은 피아노를 치는 탓에 죄송하긴 했었단다. 그런데 말씀 하신 천장의 발소리나 찍는 소리는 자기가 아니어서 억울 하다고. 자신도 윗층에서 나는 쿵쿵 거리는 소음에 예민해져서 도서관을 가고 나가기도 해봤지만 포기 하고 살았단다.
그런데 근자에 밑에 집(나) 에서 천장의 발소리랑,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로 항의 하니 놀랬고, 샌드위치 소음으로 오해받는것 같아서 속상했댄다. 그런데 오늘 편지를 읽고 있던 차에 또 위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와 피아노 소음이 들려서 오해할까봐 내려왔던 거란다.
(아 이 아파트는 뭐 집집마다 다 피아노야;;)
그런데 설명의 말미에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하며 가카 멘트 나오더니, "그래도 올라갈 생각은 안하고 참았었어요. 이런 거로 올라갈 정돈 아닌 것 같아서.." 라고 말끝 흐린다.
날 책망하는 우회적인 수사인가 싶어서 온화한 표정으로 신랄하게 설명했다.
내가 예민할수 밖에 없는 이유. 밤에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 혹시 몰라 댁의 앞에서 한 새벽에 서 있었더니 소리가 나더라, 예전에 계셨던 이웃은 정말 조용했는데도 아이들이 뛰어 죄송하다고 음료수 들고 내려 오셔서 나도 의아했던 적이 있다..고로 미루어보건데 아파트 구조상의 문제는 아닐거라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댁의 현관 앞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고 내려왔을 때, 그때 자고 있었다고 말하셨는데, 제가 이런 거로 오해하기 싫은 고로 바깥에서 댁의 거실과 창문(내방 위, 그 아가씨 방) 불 켜져 있던 것도 확인을 했다. 고로 죄송스럽지만 저로서는 아가씨 방에서 나는 소음일거라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고.
자기가 그때 자고 있었다고 얘기할 때 '어디서 약을 팔어..' 싶더 라만. 흥분안하고 사실관계 정확이 이야기 하니 죄송은 하는 눈치다. 그런데 그럼에도 여자 셋이 어떻게 발뒤꿈치로 새벽에 울릴 수가 있냐며 그건 정말 오해라고 한다.
사실 발뒤꿈치만이 아니라 가구 끄는 소리, 둔탁한 물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지만.
그래서 아예 내 쪽에서 그럼 5층 올라가서 얘기해볼까요? 댁에서도 그렇게 힘들어 하시는데 이참에 같이 가서 설명하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라고. '그러자' 하고 따라나서는데,
마침 5층 젊은 아주머니가 나오시더니 자기네가 밤에 역기랑 아령을 든단다.
이런 씨발.
욕은 안하고 웃으면서 여차저차 얘기하니 죄송하다고, 그래서 주의 부탁드리면서, 소음이 대각선, 층건너에서도 들리는 경우가 있더라, 양해 바란다고 하고 내려왔다. 윗집 아가씨도 적지 않게 뭔가 쌓인게 있는지 피아노 소리, 쿵쿵 거리던 소음 라인이 이쪽, 저쪽이었는데 하며 물어본다. 암튼 이 모든게 유주얼서스펙트 같은 류가 아니라면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소음에 두집이 헛심을 쓴 꼴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전에 이사 갔어야 했어, 부동산 경기가 최악이야. 제기랄 이 똥망 아파트 좀 있으면 재개발 한다고 하겠네 흐와아앙..
결국 그 아가씨랑 같이 내려오고 헤어지는 통에는 마음이 좀 풀려서,
근데 여기서 '개드립.'
"초면에 실례지만, 많이 놀란게 헤어진 여자친구랑 정말 많이 닮으셨네요. 어머니도 놀라셔서...."
"....."
그러고보니 제법 미인이다...-0-;;
소음 따지러 올라가면서 수염 깎고 가르마 타고, 후줄근한 난닝구에 반바지 차림에 쓰레빠가 아닌 면바지 버버리 셔츠, 단화를 신은 이유다. ㅡ.ㅡ;; 이게 뭔..
본인이 결코 대한민국 남자 10~20프로의 외모는 못되는 자이나, 일단 키는 180을 턱걸이 했고..
예전 상담 받던 사내 닥터 말로는 "Maquis 씨 대한민국 20대 남자 중에서 전수조사로 통계내면 중상위 라고 생각 하는데요..참 자신 없어 하시네.." 하더라만..
여러분 죄송합니다.
예전에 과 여선배가 닮았다며 보여준 사진.
사실 얘기하면서도 그 아가씨 눈매라던가 키라던가, 윤곽이라던가 이런 부분을 살짝 캐치하고는 했는데 정말 닮았네.
사람 무안하게.
힘들던 상황이었던지라, 한 때의 감정을 못이겨 큰 상처를 주며 헤어 졌고, 곧이어 그녀는 복수인지 상처인지 아님 원래 그럴 배신이 었는지, 얼마안가 다른 남자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이제 잊혀질 만하고 다른 사람에 관심둘 요량도 있겠거니와 그런데도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죄책감이 남아 있다..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밖에 나와 정자 근처에 사람 없는거 확인하고 담배 한대를 빼어 문다.
"휴.."
내가 닮았다는 얘길 했을 때 여자는 당황한건지, 어이가 없는지 어색하게 웃으면 말이 없었다. 목례하고 각자 돌아서고 내려왔다.
뭐 이런거로 영화 같은 썸씽 이런거 생각도 안하고 그쪽에서는 엄마 말대로 "왠 똘아이?" 라고 할수도 있으니까.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더라
밤마다 소음에 괴로 웠고, 이를 갈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미워한 대상이 옛 여자친구와 똑 닮은 사람이더라는.
생각하고 또 과거를 들여다 보니 맘이 쓰리다.
최근 덧글